[이나영의 ‘고령사회 리포트’] ⑮치매 무죄, 그리고 격리되지 않을 권리
[이나영의 ‘고령사회 리포트’] ⑮치매 무죄, 그리고 격리되지 않을 권리
  • 이나영 객원기자 (senioryoung@k-health.com)
  • 승인 2017.06.19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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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스테르담 근교에서 일하는 간호사 슬뢰체스씨는 수퍼마켓 캐셔라는 직업이 하나 더 있다. 가게를 방문하는 노인들은 무료로 쇼핑하고 그녀와 담소를 나누며 귀가하는 것이 일상이다. 수십 대의 CCTV와 첨단안전장치가 설치된 이상한 수퍼마켓. 이곳에서 그녀는 계산원을 가장한 간호사다. 이 마을의 치매노인은 장을 보고 주말에 교회를 가는 등 일상을 보내며 24시간 보호받고있다.

# 도쿄의 한 식당을 방문한 미즈호씨. 햄버거를 주문했지만 만두가 나왔다. 하지만 짜증을 내거나 주방장을 부르지 않는다. 이 식당의 이름은 ‘주문 실수하는 식당’. 치매를 앓는 할머니들이 서빙하는 이 식당은 치매노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3일간 팝업스토어로 운영됐다.

이나영 객원기자

치매는 대표적인 노인성질환이다. 치매에 걸리면 뇌기능이 손상되고 인지능력이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질병에 걸리면 일상을 예전처럼 보내는 것이 어려워진다.

치매가 심해지면 사회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치매선진국으로 알려진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치매환자를 격리하기보다 일상을 함께 보내도록 장려해 건강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위에서 소개한 네덜란드 ‘호그벡(Hogeweyk)’ 마을은 치매요양시설이다. 4500여평 부지에 중증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 150여명이 가구를 이뤄 살고 있다.

부지전체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실종위험에서 안전하며 여느 마을처럼 수퍼마켓, 레스토랑, 극장 등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하며 안전하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

입주한 치매노인들은 평소처럼 일상을 즐긴다. 심지어 동호회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한다. 마을편의시설에서는 의료진이 일하며 자연스럽게 환자를 파악한다. 요양시설 내에서만 생활하는 것보다 스트레스가 적어 약물복용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또 영국에는 알츠하이머카페도 있다. 치매환자는 이곳에서 정보도 얻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도 갖는다. 치매환자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기획된 일본식당에서는 음식을 잘못 가져다줘도 고객들은 모두 이해한다. 격리나 차단보다는 수용이나 이해의 폭이 큰 사례다.

일본의 ‘주문 실수하는 식당’. 야후 재팬 홈페이지.

고령사회를 앞둔 우리나라도 치매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치매환자는 현재 70여만명으로 7년 후에는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도 역시 치매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60세 이상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은 ‘치매(44%)’로 ‘심혈관질환(30%)’이나 ‘암(24%)’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는 대부분 치매에 걸리면 집이나 요양원에 갇혀 지내야한다고 생각한다. 즉 치매판정은 종신형을 선고받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올해부터 ‘치매안심마을’이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치매안심마을은 정부의 치매관리종합계획 중 하나로 마을사람들이 치매파트너가 돼 치매환자와 가족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치매예방을 위해 ‘치매예방수칙 3·3·3’을 발표했다. 3·3·3은 3가지 권유사항과 3가지 금기사항, 그리고 3가지 실행사항을 나타낸다. 꾸준히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검진받고, 술·담배는 멀리하며 책과 가족 간 소통은 가까이하라는 내용이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환이다. 치매환자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제야 정부의 치매관리종합계획이 시동을 걸었다. 해외사례를 부럽다고만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나를 비롯해 내 주변 소중한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서라도 치매에 관한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기억을 잃어도 추억은 남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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